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그대 기쁨은 무언가요


수능 공부를 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많이 들었다. 그 시절에도 기숙사에서 생활했었는데, 어느 강사가 좋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다 같이 그 강의를 찾아 듣는 식이었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영어는 이명학, 생물은 백호, 물리는 배기범이 유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화제는 단연 수학에서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듣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신승범 혹은 한석원으로 압축되었다. 신승범을 듣는 아이와 한석원을 듣는 아이 중 누가 모의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느냐 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꽤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나는 워낙에 귀가 얇아서 신승범, 한석원은 물론 남휘종, 삽자루까지 좋다는 강사는 다 들어봤다. 한 3강쯤 보고 게을러져서 열심히 안 본 인강도 수없이 많지만, 수학은 역시 한석원이었다.

신승범 강사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의 중간중간에 ‘정신교육’이라는 걸 한다. 나태해지기 쉬운 수험생활 중간중간에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는 요지의 쓴소리다. 대학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해라, 인생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뭐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다. 이 ‘정신교육’이라는 게 듣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려서, 이 파트만 돌려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전부 건너뛰는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내가 ‘정신교육’을 건너뛰게 된 계기가 있다.

신승범 강사가 ‘성공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며칠 전에 장관급 인사와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아내분이 신승범의 옆자리에 앉았나 보다. 아내분은 신승범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내가 이이랑 같이 밥 먹는 게 얼마나 오랜 만인지 몰라요’라고 했단다. ‘정말 멋있지 않니 얘들아?’ 신승범은 특유의 표정으로 씩 웃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좀 갸우뚱했다. 성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랑 같이 식사할 시간도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신승범이 가진 성공에 대한 생각이 나랑 많이 다르구나 싶었고, ‘성공하려면 월화수목금금금!’ 류의 가치관을 주입 받는 게 스트레스라서 그냥 그 뒤로는 다 건너뛰었다.

쓴소리는 귓등으로도 안 듣던 고등학생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입시 핑계도 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매일매일 결정해야만 한다. 마음은 고민으로 가득한데, 딱 떨어지는 답은 안 나오니, 몸이 계속 게을러졌다. 요즘엔 정말 마음이 내키는 대로’만’ 살고 있다. 일과가 끝나면 대기실에 들어와 뚱가뚱가 기타를 치다가, 페이스북도 하고, 새로 나온 앨범도 쓱 훑어보고, 책도 빈둥빈둥 읽다가, 땀 흘리고 싶으면 운동을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시작하자마자 그만둔 것들도 많고, 그냥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해버리는 경우도 잦다. 뭔가 여러 가지를 건드려보는 것 같은데, 딱 재미있을 때까지만 하고 만다. 얕은 구덩이만 여러 개 설렁설렁 파고 있는 것이다. 내 일상에 대체로 만족하고 행복하지만, 이런 시간만 죽이는 행위 말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들이부을만한, 그런 목표를 가질 수는 없는 걸까.

신승범 강사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서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몰입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