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여정이 바로 보상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책 1만 7천권을 보유한 장서가이다. 영화는 하루에 세 편 이상 못 보지만, 책은 하루 12시간을 읽어도 질리는 일이 없다는 그는, 2017년 <닥치는대로 끌리는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을 냈다. 제목이 곧 책 내용의 요약이다. 책을 읽는 것은 심오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도,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위해서도 아닌, 오직 재미있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펼친 책을 완독하려는 노력도, 내용을 기억하려는 노력도 그는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것의 핵심은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 그 시간이라고.
“열심히만 하면 뭐하냐. 잘해야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원하는만큼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했다. 그래 모든 일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떨까. 아니 애초에 잘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이동진의 독서법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알고리즘 과제를 붙잡고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완수하지 못한 채로 제출했다. 만족할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과제의 점수가 아닌 과제에 들인 시간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
“그 여정이 바로 보상이다.” 인턴 기간 중 방문한 스타트업 투자사의 회의실에 적힌 문구였다. 스티브 잡스가 남겼다는 이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회사가 실패하더라도 그 동안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니 너무 아쉬워 말라.’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잡스는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정의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보상은 없다고. 애초에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삶에는 오직 내가 누린 시간만이 있을 뿐이니,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