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맙다, 젤다의 전설
[원피스]는 동명의 보물 ‘원피스’를 찾기 위해, 해적 루피가 동료들을 영입하고 바다를 항해한다는 스토리의 만화다. 2022년 4월 기준으로 [원피스]는 만화책 100권이 넘어가는데, 1권에서 루피가 찾고야 말겠다던 ‘원피스’는 100권이 넘어가도록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맥거핀(MacGuffin)은 이야기의 전개에 아주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치를 일컫는다. 나는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보물 ‘원피스’가 실은 맥거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원피스] 200권 즈음에 ‘원피스의 정체는 사실 너희들의 우정이었단다’ 쯤으로 허무하게 끝나도, 괜찮을 것이다. [원피스]의 재미를 설명하는 데에 보물 ‘원피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100년 만에 깨어난 용사 링크가 재앙 가논을 물리친다”는 간단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간다. ‘가논을 물리친다’는 최종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이 세계 곳곳을 탐험하게 된다. ‘저 산맥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오로라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나올까?’, ‘왜 이 건물에만 낙뢰가 떨어질까?’ 그렇게 작은 호기심을 따라 플레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게임은 엔딩을 보기 위한 게임이 아니구나!’ 가논은 필요하다. 가논이 없었더라면 플레이어가 이 넓은 필드를 모험할 동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논은 이 게임의 재미를 설명하는 데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가논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맥거핀에 불과하다.
삶에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목표가 없다면 살아갈 동인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목표도 실은 맥거핀이니까. 내 인생을 새로운 여정으로 인도했다면, 어딘가로 움직여야 할 동인이 되어주었다면 그걸로 되었다. 보물 원피스가 그러하듯, 재앙 가논이 그러하듯.
‘그 여정이 바로 보상’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고맙다 젤다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