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진지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하였다.
LMS에 발표자료를 업로드했다. 글쓰기 버튼을 눌러 파일을 첨부하고, 제목과 본문을 따로 적어야 했다. 보통 이런 곳에 적는 본문에는 제목과 같은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하거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써넣고는 한다. 나도 으레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제출하려는데 문득 이런 인사치레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도 때와 장소가 있다지만, 죽어도 ‘감사하다’고 쓰고 싶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후임과 함께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참여한 사람은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과 서명을 적어야 했는데, 후임이 서명란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 것이었다. 야 공적인 문서에 그게 뭐냐. 이름을 정자로 적어야지.
내가 말을 하고도 다시 생각해보니, 본래 서명의 목적은 서명을 한 자가 이름과 같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에 있었다. 서명으로 이름을 적는 것은 단지 필체에 본인 여부를 판독할 힌트가 많기 때문에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본인을 판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없다.
윤은영 교수님은 강의 중에 종종 인터넷을 이용해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시간을 주신다. 윤은영 교수님이 ‘요즘엔 나무위키가 좋더라’고 말씀하시니 학생 전체가 빵 터졌다. ‘교수님이 나무위키를?’ 분명히 그 웃음에는 나무위키가 가진 ‘가벼움’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있다. 가벼운 게 어때서? 나무위키는 가벼워서 성공했다.
좀 심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재미있는 LMS를 상상해보라. 학생들도 본인의 메일 서명에 각자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첨부하면 어떨까? 만우절에 교수님이 먼저 교복을 입고 오신다면? 졸업식에 총장님이 파워레인저 코스프레를 하고 온다면? 아예 교토대처럼 학생들도 코스프레를 한 채로 졸업장을 받으면 어떨까?
재미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거라고? 예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웃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허용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에게 허용되는 웃음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 나무위키도 분명 ‘위키가 재미있으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성공했다.
나는 ‘감사합니다’를 지운 자리에 ‘찡긋’을 채워 넣었다가 다시 지웠다. 내 안의 작은 반란군은 혁명을 시도하다가 내부 갈등으로 무너졌다. ‘심각하게 살지 말자’는 생각을 심각한 글로 옮기면서 오늘도 진지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