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의 첫사랑
대출 문제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일이 생겼다. ‘자격득실확인서’라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건강보험 자격을 얻고, 잃었던 내역을 확인하는 증명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정한 소득이 생기는 순간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매달 일정 금액의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한다. 소득이 없는 경우, 소득이 있는 가족의 피부양자가 되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나 역시 26년간, 직장가입자인 아버지의 피부양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아버지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나는 잠시 건강보험 자격을 잃었다가, 다시 얻고를 반복했다. 이 증명서에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거쳐온 직장의 이름이 적혀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직장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종의 사관이 된 셈이다.
아버지의 짧고 긴 경력들이 작은 표에 정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6개월만 일하셨구나. 여기에서는 7년이나 있으셨네. 지금 직장은 10년이 넘으셨고.
고향 집에는 두꺼운 앨범이 있다. 나와 형, 누나의 어릴 적 사진, 그리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꽂혀있다. 단발머리를 한 20대의 아버지가 친구들과 햄버거 놀이를 하고 있다.
아빠가 내 나이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까? 직장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첫사랑은 누구였을까?
[하남중기] 취득일 2000.11.13, 상실일 2001.05.01
[광산철강] 취득일 2001.07.01, 상실일 2008.06.02
건조하게 적힌 연월일 뒤에 실재했을 그 많은 아버지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며, 직장 동료이고 첫사랑이었겠지 잠시 생각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증명서를 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