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열차를 타는 삶
한 달 내내 재택근무만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엔 매일 사무실로 출근한다. 우리 집과 사무실은 얼핏 지도로 보기에는 꽤나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그나마 서울을 가로지르는 9호선이 있어 생각보다 통근 시간은 길지 않은 편이다. 주요 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출퇴근 시간의 급행 열차는 항상 사람이 가득 들어차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불편할 정도의 거리에서 몸을 맞대고 서있는 것이 괴로워 속된 말로 ‘지옥철’이라 부르기도 한다.
9호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면 항상 급행을 탈지, 일반 열차를 탈지 고민하곤 한다. 빠르지만 몸이 고된 급행을 탈 것이냐, 느리지만 몸은 편한 일반을 탈 것이냐. 언제나 선택은 같다. ‘그래도 빠른 급행을 타자’. 급행을 타고 10분 일찍 도착해서 쌓인 성과가 나중에 엄청난 결실이 되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일반열차를 선택하지 못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에 ‘습관은 어떤 사람이 되는 일, 습관의 핵심은 결국 정체성’이라는 통찰이 나온다. 우리가 매일하는 자연스러운 선택 역시 습관의 일부로 본다면, 내가 급행 열차만을 선택하는 것도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유튜브를 1.5배속으로 본다. 걸음도 빠르다. 두괄식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답답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걸까?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강박,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이 모든 강박들(어쩌면 내가 세운 삶의 가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지금의 내가 좋지만, 그래도 때로는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강박이 없는 삶은 어떨까, 일반 열차를 타는 삶은 어떨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