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재미삼아 하는 일


“페퍼톤스 2집 앨범 수록곡 같은 노래는 저희가 같이 수업을 빠지고 우리 학교 잔디밭에 누워 쉬던 경험을 담아낸 노래에요. 이 노래는 ‘이건 내 경험이니까’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곡보다도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요.”

어쩌면 한 번 들어보고 별 감흥 없이 다음 곡으로 넘겨버렸을 이 노래는, 페퍼톤스의 인터뷰 한 줄로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노래가 됐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내 정신이 어디론가 날아가 이름 모를 잔디밭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한다. 그들이 누워 쉬었다던 그 잔디밭에 누워서 친한 친구와 같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아니 기타를 연주하면서 같이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내가 직접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으로 몇 년간 상상만 했다.

공부가 지겨울 때면 도피하는 마음으로 방에서 통기타를 쳤다. 유투브에 떠도는 수많은 기타 강좌 중 배워볼 만 하겠다 싶은 노래의 반주를 배워,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서로 다르게 들리는 노래에도 비슷하게 쓰이는 코드 진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문성에 차이는 있을진저 코드 진행만으로도 독창적인 작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는 얼추 기타로 연주가 가능하니, 문제는 번뜩이는 감각으로 멜로디 라인을 짜는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내 옆에 즉흥적으로 만든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는 미친 재능을 가진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다양한 곡에서 카피한 코드들로 재미있는 곡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나중에는 기억도 나지 않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릴 가사와 멜로디를 뱉고 나면 왜 그리도 후련한지. 아직도 가끔은 이 친구와 효자에서 걸어오면서 힙합 비트를 틀어놓고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하곤 한다.

학관 계단 앞에서 동아리 공연을 할 때가 있다. 급한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면 대체로 멈춰 서서 공연을 감상하고 간다. 학관에서 하는 공연에는 동아리 정기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굳이 시간을 내어 공연장에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정기공연보다 훨씬 프리하게 하는 듯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이면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겠지만, 재미로 공연하는 듯한, 틀려도 좋을 것 같은 그 느낌이 정말 좋다. 굳이 춤이나 악기 연주가 아니더라도 재미 삼아 친한 친구의 사진전을 열고, 솔로 7000, 8000일을 기념해주는 행사도 너무너무 즐겁다.

학교에 ‘그냥 재미 삼아’ 하는 일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기존에 전해 내려오던 준비위원회(새터, 축제, 포카전)나 동아리 공연 이외에 새로운 시도들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지난 11월 10일, 학교에서 열렸던 <졸업파티>처럼 말이다. 따뜻한 날에 <지곡호수 풍경화 그리기 대회>를 연달지, <코스프레 입학식/졸업식>을 한달지 하는 우리만 할 수 있는 행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브레멘, 스틸러만 밴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수밴드>, <희주밴드> 같은 작은 개인밴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실 기존에 없던 행사를 만들거나, 동아리 후광 없이 공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렵기도 하고, 뜻 맞는 사람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총학생회가 나서서 나 같은 소심이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총학생회 사업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행사를 많이 만들어 홍보해주고, 동아리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도 연습할 수 있도록 장소나 비용을 지원해주고, 그런 인디들 여럿이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공연무대를 정기적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총학생회가 나서서 멍석을 계속 깔아주면 기숙사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원석 같은 아이디어가 밖으로 표출될 것이고, 그것들이 우리 학교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아마추어(amateur)는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에서 파생되었다. ‘아마추어 같다’고 하면 보통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사용되지만, 아마추어의 본래 어원은 취미를 ‘애인(amateur)‘처럼 사랑한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모든 분야에 있어서 프로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행사의 만듦새가 매끄럽지 않아도, 연주자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서로의 예술에 대해서는, 그 용기에 대해서는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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