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uman + One
늦은 밤에 출동벨이 울렸다. 임신부가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오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이미 출산 예정일을 넘겼다고 말했다. 신고 위치는 센터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길이 막힐 경우 10분이 넘게 소요되는 거리다. 한 시가 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규정 속도를 넘긴 채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늦은 밤이라 차가 얼마 없었다.
임신부는 방 바닥에 누워있었다. 일단 임신부를 바닥에서 들것에 올려 태우고 구급차로 조심히 옮겼다. 임신부는 약간의 충격에도 큰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구급차에 임신부를 싣고, 제주시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제발 병원까지만 버텨주기를.
구급차에는 만약을 대비한 ‘분만세트’가 있다. 이름 그대로 분만을 돕는 각종 의료용 기구들이 있는데, 임산부 밑에 받치는 수술용 방수시트부터 아기의 목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하는 기구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기구가 들어있다. 맨 처음 센터에 발령 받아 구급차 내부에 있는 물품을 익힐 때 한 번 꺼내보고, 이런게 있다 정도만 알아뒀는데 그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구급차에서 아기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구급대원은 조금 더 힘을 주셔야한다고 말했고, 몇 분 간의 산고 끝에 아기의 몸통 전체가 빠져나왔다. 구급 반장님이 목에 감긴 탯줄을 풀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아기를 담요로 감싸 산모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아기는 눈을 껌뻑껌뻑하고, 입을 오물오물했다. “남자아이네요.” 반장님은 아기의 탯줄에 클립을 달았고,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다. 산모와 아기는 모두 건강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구급차에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다쳤거나, 아픈 사람들 뿐이다. 그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있고, 죽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곳에서 태어나는 생명. 대한민국의 인구가 한 명 늘어나는 그 장면을 목도했다. 반장님도 구급 경력 동안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하셨다.
나에게는 두 살 된 조카가 있다. 누나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기가 태어나서 요즘엔 막 뛰어다닌다. 이따금 누나가 쉬는 날에 온유를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광주에 내려오곤 하는데, 온유 한 명으로 온 가족의 분위기가 들뜨는 게 느껴진다. 하루종일 온유가 먹는 것, 걷는 것, 자는 것을 지켜보는데 집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모님은 온유가 집에 있다 없으면, 집이 텅 빈 것처럼 휑하다고 하신다. 그 마음을 알기에 누나도 기회가 닿는대로 광주에 내려오는 편이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해보지 않았는데, 온유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산모를 분만실로 옮기고 병원을 빠져나오는데, 뒤늦게 도착한 산모의 가족들이 응급실로 들어오고 있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들은 모양이다. 응급실에서 보기 드문 환한 표정이다. 구급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날아가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저 아이로 인해 저 가족도 한동안 웃음이 끊이질 않겠지 생각하니 나도 웃음이 지어졌다. 저 가족이 특별히 더 행복했으면, 특별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하고 기도한다.
곧바로 센터로 돌아왔다. 산모도, 아이도, 그 누구도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아기가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밀던 때에, 어느 익명의 의무소방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비록 나 혼자만이 기억한다 할지라도, 좋다.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