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


바벨탑은 성경에 등장하는 건축물이다. 기술 발달로 기고만장해진 인간들은 말씀을 거스르고 탑을 높이 높이 쌓다가, 하나님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하나님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리고, 탑을 쌓던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탑 쌓기에 실패하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피자를 얻어먹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나이롱신자였던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오 하나님.. 왜 영어를 만드셔서 이를 배우게 하나이까..

바벨탑 이전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와 달라, 낱말만 들으면 사물의 본질이 저절로 떠올랐다고 한다. 물론 나도 안 들어봐서 어떤 느낌인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프랑스어를 몰라도 마티스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머라이 어 캐리의 Hero라는 노래를 처음으로 들을 때였다. 가사가 무슨 뜻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는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뭔지는 몰라도 분명히 나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Hero의 가사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난 후였는데, 내가 짐작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가사여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 교통사고 출동에 나갔다. 트럭이 전신주를 들이받아 전신주가 그대로 8차선 도로에 고꾸라졌는데, 전신주와 전선을 보고 놀란 차량이 급정거해 4중 추돌 사고가 난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환자는 없었는데, 문제는 환자들이 모두 중국 관광객이었다는 것이다. 몸에 아픈 곳은 없는지, 사고 당시의 상황은 기억나는지 등등 물어볼 것은 많은데 간단한 영어조차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머라이어캐리의 Hero가 나의 가슴에 와닿은 것처럼 중국인의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이해가 되기는커녕 서로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으으 왜 언어를 분리해가지고. 그때 구급반장님이 한국관광공사에 전화를 거셨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한국에 온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무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번 없이 1330으로 걸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고퀄리티 통역을 받을 수 있으니 모두 애용하도록 하자. 1330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환자를 안전히 병원에 인계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1330!

SF소설 <은하수를 히치하이킹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는 ‘바벨피쉬’라는 생명체가 등장한다. 아마 바벨탑에서 그 이름을 따왔을 이 생명체는 신기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물고기를 귀에 집어넣으면 은하계 어떤 생명체의 언어도 모두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흡사 은하계 관광객을 위한 1330이라고 할 수 있다. ‘에휴 세상에 그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싶은데 실제로 지난 10월, 구글에서는 40개 언어의 실시간 통역 기능이 내장된 이어폰 ‘픽셀 버드’를 발표했다. 구글 번역기의 번역 품질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하니 정말로 십 년 안에는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하나님이 충분히 노하실 만 할 것 같은데, 과학기술이 더 더 발전하면 어떻게 될까? 아주 오랜 시간(몇 만 년 ~ 몇백만 년)을 뗀석기를 사용하던 고대 인류가 돌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 고작 12,000년 전이다. 이 간석기를 7,000년가량 사용하다가 청동으로 물건을, 그 뒤엔 철기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은 실로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해서 더 더 짧은 시간에 더 더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고, 덕분에 요즘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한 기술들이 쏟아진다.

아이폰 3GS가 한국에 출시된 것이 2009년 말이었는데, 그 사이 매년 스마트폰의 성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만 생각해도 그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 앞으로 1만 년, 10만 년, 100만 년이 흐른 후의 과학 기술은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 상상할 수는 있을까? 그때는 정말로 인간이 신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좀 무섭기도 하고, 그걸 살아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그만큼의 연차가 쌓이기 전에 바벨탑이 무너져버릴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