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사랑하고 싶어요?
동네 마을회관에 갔다. 소화기 사용법을 알려드리러. 오늘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들으셔서 좀 지루하셨을 게다. 그래서 오늘은 실제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화기를 들고 방문했다. 아침부터 마을회관은 노인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24시간 에어컨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해서 서른 분 정도가 디귿(ㄷ) 모양으로 앉아계셨다. 센터장님이 가운데에 나가 소화기를 들고 교육한다.
간단히 교육을 마치고 방바닥에 앉아 수박을 얻어먹는데, 갑자기 스피커를 지참한 성인 남녀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들’ 명함을 받아들고 보니 부부 트로트 가수 ‘백만장자’라고 한다. 좋은 이름이다. ‘오늘은 지난주에 가르쳐드렸던 노래 다시 한번 불러볼게요.’ 아하. 마을회관을 돌면서 노래를 가르쳐주는 사람들이구나. 여자 가수분이 몇 곡을 쉴 새 없이 잇따라 부르더니, 마이크를 앞에 앉은 할머니에게 넘겼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수 문연주의 <도련님>이라는 곡이었다. [오늘 밤 도련님께 고백할래요. 도련님을 짝사랑했다고. 사랑하면 안 되나요? 좋아해도 안 되나요?] 할머니가 이런 노래를? 내 머릿속에서 ‘할머니’와 ‘짝사랑’은 연결된 적이 없는 단어 쌍이었다. 돋보기를 끼고 빠글빠글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 그런 할머니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회관의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을까? 그래서 매일 부푼 가슴으로 마을회관에 오실까?
다시 한번 방안을 둘러봤다. 흰색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할머니. 흰 셔츠에 감색 베스트, 거기에 챙이 동그란 모자까지 쓰고 오신 할아버지. 한껏 꾸미고 마을회관에 오신 분들이 보인다. 마을회관이 만남의 장이었구나. 깨달음의 순간, 할머니의 열창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뿌듯한 표정의 할머니,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는다. 왜 나이가 들면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을까. 지금의 내가 사랑받고 싶은 것처럼, 노인이 된 나도 분명 그럴 것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일생 동안을 다른 사람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사랑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기를. 그 한마디를 듣고 살기 위하여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인가 하는, 그런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했다… . . 어느날 우연히 거울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