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플랫화이트, 플랫라이프


내 사촌, 작은 아빠의 아들인 ‘브라이언’은 4살에 시드니로 이민을 갔다. 어린 내 기억 속 ‘지윤’이라는 사람은, 어느새 호주식 영어 엑센트를 구사하는 청년 브라이언이 되어있었다.

작고 동글동글 한 것이 분명 우리 가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이 분명하나, 그 안의 소프트웨어는 완전 호주 것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구글링을 하고, 깜짝 놀랄 때 ‘지져스..’를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시드니보다 쏘울(Seoul)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영어가 모국어라서 부럽다..’

그 뿐이 아니다. 세컨 랭귀지로 독일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고, 수영 실력은 인명 구조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게 학교의 필수 교육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더 부러웠다. 난 지금까지 뭐했지..

17년의 교육은 나와 브라이언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인생게임을 풀패키지로 플레이하는 브라이언을 보며, 나는 이제껏 너무도 ‘필요한 것만’ 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거진 내 인생 = 게임 무료 버전..

나도 즐겨 하는 스포츠 두어 개쯤 가지고, 만들 줄 아는 음식이 서너 개 있었다면. 낯선 외국어를 할 줄 알고, 내가 내린 커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이제껏 딴짓으로 치부했던 일들, 시간 낭비라 생각했던 것들. 일주일에 하루쯤은 그런 일들에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일은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여집합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오직 내가 들인 시간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들. 내 취미, 내가 만든 이야깃거리, 나의 즐거움 버튼. 십 년 후쯤 나는 얼마나 폭넓은 사람이 되어있을까. 브라이언이 만들어준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