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에 다녀왔다. 간만에 집이 그리웠다. 스무살 이후로 가족과 보낸 시간을 세어보니 정말 며칠이 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겠냐 싶어 새벽에 티켓을 끊고 다음날 버스에 올라탔다.

집안 물건의 위치가 달라져있었다. 이곳저곳 뒤져보다가 서랍장에서 혈당측정기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건강 정기검진을 받으셨는데,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혈당을 체크하랬댄다.

누나가 혈당체크기를 사서 보내줬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몰라 서랍장에 그냥 묵혀두고 계셨다. 나는 의무소방으로 복무하면서 사용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구급차에 앉아 선임에게 배웠던 것처럼, 어머니를 옆에 앉혀두고 하나씩 알려드렸다.

혈당검사지를 기기에 꽂으면 기기가 켜져. 바늘로 손가락에 피를 내고, 피를 검사지의 끝부분에 묻히면 돼. 근데 그냥 바늘로 찌르면 아프니까 채혈기를 쓰는거야. 먼저 채혈기에 바늘을 꽂고 뚜껑을 돌려서 딴 다음에..

나는 누나가 아기를 키우는 모습을 보았다. 난 아기가 어느정도 크면, 알아서 숟가락 들고 밥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숟가락은 커녕 컵으로 물 마시는 것조차 가르쳐줘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도 내가 물 마시는 걸 배워서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어머니를 가르쳐주면서,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디게 배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새삼 서글픔을 느꼈다. 어머니에게 배워 자란 내가 이제는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내가 부쩍 자란 나이가 되고 어머니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

이제 고향 집에 부모님 두 분만 사신다. 의자가 두 개 밖에 없는 식탁 맞은 편에 걸린 다섯 명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놈은 세상의 위대한 문제를 풀겠다며 온갖 곳을 쏘다니는데, 어머니는 이 간단한 것을 해결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