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니까
119센터에 깜짝 손님이 찾아왔다. 근처 유치원에서 6살 아이들이 귀여운 유니폼을 입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구급차 정리를 하다가 조금 늦게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사무실 가운데에서 MC를 보고 계시던 선생님이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고 손을 잡아끌어서 조금 당황했다. 아이들 수가 조금 많아서 소방관 1명 당 아이 2명꼴로 마주 보고 섰는데, 선생님이 노래를 틀고 아이들이 춤을 추면, 노래의 적절한 포인트에서 아이들과 짝짝꿍하고 빙글빙글 돌면 되는 것이었다. 머리에는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흰 셔츠, 갈색 바지를 맞춰 입은 것이 귀여웠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분명히 나도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따라불렀었는데 이제는 다음 부분의 가사도, 멜로디도 가물가물했다. 마지막으로 동요를 부른 게 언제인지. 나도 저렇게 작아서 엄마 등에 폭 업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다 커버려서 소방관 옷을 입고 내가 사람들을 업는구나.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것이니 박수도 크게 치고, 짝짝꿍도 힘껏 해줬다. 나도 어릴 적에 사람들 앞에 서서 율동 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많이 재밌었다. 그래서 친척들이 그렇게 나를 세워 놓고 개다리춤을 추게 했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빨간 옷 입은 서양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가지는 않았을까 기대하는 순수함은 잃어버렸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좋은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더 여유로워지고. 특히 좋은 기억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게 좋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서도 ‘그래, 그때 그런 일도 있었지’ 할 수 있다면, 그런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다. 크리스마스가 월요일이니까 데이트를 하든, 가족이랑 놀러 가든, 아무튼 무엇을 하든 내일이 제일 적절한 날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별 계획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감히 권하자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하나 해보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소의 우리라면 가지 않았을 식당을, 보지 않았을 영화를,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보기를. 종국에는 다 좋게 기억될 것이다. 그때 정말 더럽게 맛없지 않았냐고, 재미없었다고, 괜히 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하하 웃겠지. 그렇게 그것마저 좋은 기억이 되겠지.
크리스마스라고 해봤자 삼백예순다섯 날 중 하루일 뿐이지만, 특별하다고 믿으면 정말 특별해진다. 내일은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