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승려의 불면증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략 6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꾸준히 교회에 다녔다. 헌금하라고 받은 1000원짜리 지폐 2장을 털레털레 들고, 다섯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는 길은 늘 즐거웠다. 교회 어른들은 쪼끄만 놈이 꾸준히 교회에 나온다며 나를 예뻐하셨고, 나는 교회 행사 날 떡볶이와 바꿔 먹을 수 있는 가상화폐 ‘달란트’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성경 공부를 했다. 찬송가를 크게 따라 부르고, 성경 퀴즈에서도 늘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세례도 받았고, 여름성경학교에도 꾸준히 참석했지만, 고백컨대 나는 단 한 번도 신을 믿은 적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가족을 따라 교회에 다녔을 뿐.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누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내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은 이후에도 꾸준히 교회에 출석했으니 그 신실함을 인정할만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누이는 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합격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학시절 내내 4점대 학점을 놓치지 않았던 누나도 3년간 고배를 마셨고, 4년째에야 겨우 합격해 집에서 먼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누나 거기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지역이고, 많이 시골이던데 괜찮겠어?”, “뭐, 괜찮겠지. 하나님이 나를 거기로 보내신 데에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주변 사람에게 잘 의지하지 않는 편이다. 괜히 부담 주는 것 같고, 부정적인 감정을 퍼뜨리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괜스레 어색하고 오글거린다. 친구 만나는 걸 제일 좋아하고, 혼자보다 여럿을 선호하지만,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책임져줄 수는 없는 거니까. 인생의 짐이 무겁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고, 나는 계속 불안하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은 하지만, 사실 계획된 것도 없고, 특출난 재능도 없어서 미래가 걱정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던 교회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걱정 없이 밝게 사셨을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대뇌피질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두껍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대뇌피질이 더 두껍다는 것은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이 더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자극에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고,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도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뇌피질의 두께와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불안에 더 잘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 나도 그런 이유로 (올바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종교를 가져보려고 했다. 나도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아닌 어떤 신에게라도 의지할 수 있다면 이 불안이 사라질까. 하지만 억지로 믿어보려고 해도, 내 안 깊은 곳의, 신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의심이 나를 곧장 멈춰세웠다.

그러던 중, 류시화 시인의 글을 읽었다. 시인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생활하던 때에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비몽사몽 한 채로 생활하면서 집에 돌아갈까 고민하던 중에 언덕 위에서 수행하고 있던 티베트 승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시인은 자신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억지로 잠에 들려는 노력이 도리어 잠에 드는 것을 방해한다고, 부족한 잠 때문인지 자꾸 불안해진다고 고백했단다.

승려의 대답이 참 인상 깊다.

“우리 수행자들도 불면증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잠을 잘 때 다른 사람들처럼 베개를 베고 눕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무릎을 베고 잔다고 상상하며 잠이 듭니다. 그렇게 하면 잡념이나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잠이 잘 옵니다.”

머리를 땡! 하고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토록 신앙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 “이렇게 불안하고 불완전한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한 차원 위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었다. 굳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그런 무릎을 내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나도 정말 편히 잠들 수 있겠지.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을 내 신앙으로 하련다.

어두운 새벽에 화재 출동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덤프트럭만 한 소방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2차선 도로를 달려 센터로 귀소하고 있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에 별이 많이 떠있었다. 뜬금없이 별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우리가 하늘,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태양빛이 지구의 대기층을 통과하면서 산란해 만들어진 거니까 태양빛이 없는 밤하늘은 우주를 직접 바라보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우주가 이리도 넓고, 지구가 이렇게나 작다는 것, 이 지구도 언젠가는 멸망할 거고, 더 먼 미래에는 우주도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결국에는 다 없어질 거라는 거. 사는 게 다 장난이고, 연습이 되어버린다는 거.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거. 이번 주말에는 다들 꽃놀이를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