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my dents in the universe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을 읽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이것이다. 서버 개발자로 근무한지 만 6개월이 넘어가면서, 스스로의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매일 체감한다. 홀로 방 안에서 버그를 붙잡고 (전사 재택근무 중) 몇 시간을 쩔쩔매다가, 인자 하나만 수정하면 되는 일임을 깨닫고 홀로 허탈했던 경험이 잦다. 반면 사무실에 출근해서 버그를 발견하고 추적하는 일은 훨씬 수월하고 어떨 때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해답은 내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한 버그를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원인과 해결방법을 듣다보면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DB에 이 값이 잘 들어있나 확인해볼까?’, ‘kibana에 이것과 관련한 로그가 남아있나 살펴볼까?’, ‘쿠버네티스의 로그를 확인해볼까?’ 그렇게 몰랐던 것을 배우고, 잊어버렸던 것을 상기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자랄 수 있을까?’

오늘의 책,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은 애자일 컨설턴트 김창준 님의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어떻게 하면 자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함께 자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매일매일 함께 자랄 수 있을지’로 발전시켜볼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함께 자라기’야 말로, ‘애자일’이라고 하는 일하는 방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인상깊은 구절을 일부 옮겨본다.


“이번에 잘하냐 못 하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수백, 수천 번 더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 경우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잘하냐가 아니라 지금 자라냐는 것입니다.”

저는 ‘학교 학습’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야생 학습’이 있다고 말합니다. 야생 학습의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루 세 번 3분씩 이를 닦습니다. 대략 다섯 살부터 닦았을 것이고 죽기 전까지 닦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닦는 경력과 실력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이 육칠십쯤 되면 도사 수준은 못 되어도 준전문가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악기 연주자에게 공연 시간은 이런 의도적 수련이 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그 시간들은 실력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정말 기량 향상을 목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수련, 그것만이 의도적 수련입니다.

피드백을 짧은 주기로 얻는 것, 그리고 실수를 교정할 기회가 있는 것

더글러스 엥겔바트라는 사람은 작업을 세 가지 수준으로 구분합니다. A, B, C 작업입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연구에 따르면 뛰어난 개발 전문가들은 사회 자본(social capital), 즉 인맥이 훌륭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있었죠. “업무적으로 꼭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이고, 또 당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연구에 따르면 업무 성과가 뛰어난 개발자들은 이 질문에 답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프레제는 회사에서의 실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수 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실수 예방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 회사 문화가 실수 예방보다 관리에 가까울수록 그 기업의 혁신 정도가 더 높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수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합니다. 이는 학습이론의 기본입니다. 즉, 실수 관리를 하는 문화일수록 학습을 더 잘합니다.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많은 시간을 홀로 개발을 공부해온 나에게 ‘함께 자랄 수 있다’는 개념은 생경하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강하게 긍정해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개발자들의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어서 트위터를 시작했고, 오프라인 세미나에 등록했다. 지금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 1년 후에 오늘의 나를 돌이켜보고 많이 자라있음을,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참 좋겠다.